정은주 목사 (예원교회, 총회 부총회장)
2025년 10월 10일
정은주 목사의 누가복음의 비밀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요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_눅 9:57-62
본질을 붙잡는 인생
어떤 이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담대하게 나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칭찬하시며 반기신 것이 아니라 동분서답과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답변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 사람의 관점과 예수님의 제자도는 서로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주 화려한 일이라 생각했으며, 자신이 출세를 하고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과 지혜의 말씀, 능력과 권세를 보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 많은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헌신과 희생의 삶도 필요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마치 동문서답과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영적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의 본질은 경제 문제의 해결, 질병의 치유, 세속적인 출세를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동기가 자신의 야망, 세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자기 희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은혜를 받다가도 자신의 손해를 보거나 희생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떠나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자기의 유익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 공동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때 그 떡과 물고기를 얻어먹은 사람이 남자만 오천 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배가 불러오자 모두 떠났습니다. 결국 남은 사람은 열두 명의 제자였습니다. 이것이 무리와 제자의 차이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59-90절)
이번에는 예수님게서 직접 한 사람을 지목하여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르다’는 헬라어로 ‘아콜루소’라 하는데 이는 ‘행동적 순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과 길을 따라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장사를 지내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핑계를 대며 주저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일반적인 정서를 깨뜨리는 냉정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를 장사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는 이 말씀은 부모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생활에는 영적 성장이 없습니다. 성경은 영적 우선순위에 대해 냉혹하리만큼 분명한 선을 긋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분명한 영적 진리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전진하는 인생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61-62절)
세 번째로 등장한 사람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 그에 앞서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가족과의 작별 문제에 거론하며 예수님을 따르
는 일에 주저하고 있음을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실 영적인 결단에 가족이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변화의 결단이 필요할 때 가족으로 인해 주저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 지역, 민족, 세계복음화를 위한 일에는 일체의 양보가 없어야 합니다. 기도, 전도, 헌신, 섬김에는 시간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분명한 응답을 주시면 그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홍해가 어떻게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어떻게 무너졌으며,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게 되었습니까? 지팡이 하나밖에 없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의 상식을 초월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결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도를 ‘작은 예수’라고 합니다.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영혼구원으로 삼아 이에 생명을 걸었다면 제자공동체 안의 작은 예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작은 예수가 되어 제자공동체
를 이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